여행 2026. 9. 24. 13:16

여행 일정표 앱, 조사한 걸 현지에서 펼치는 법 (워케이션 준비 12)

조사한 건 쌓였는데, 정작 여행지에서 펼칠 방법이 없었다

대만 워케이션 준비기 ⑫ · 도구 편 — 아직 떠나기 전에 쓰는 글

이 글은 「대만 한달살기 워케이션 준비」 시리즈의 12편입니다. 시작은 1편 — 세 도시로 나눈 이유.

앞서 열한 편을 썼다. 숙소를 왜 호텔로 잡았는지, 네 곳에 얼마를 냈는지, 10월 연휴를 어떻게 피했는지, 기차를 어떻게 예매했는지, 도시마다 어디에 하루를 쓸지, 그리고 두 사람 28박에 얼마가 드는지까지. 그 바탕이 된 자료는 문서 다섯 개에 쌓여 있다. 숙소 요금표, 기차 시각, 야시장 요일, 투어 열한 개 비교가 전부 거기 들어 있다.

여기까지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걸 여행지에서 어떻게 보지.

한글 문서를 폰에서 열어 스크롤하며 필요한 줄을 찾는 건 길 위에서 할 짓이 아니다. 그 자료가 필요한 순간은 늘 캐리어를 끌고 있거나, 택시 기사 옆에 서 있거나, 야시장 한복판이다. 그런 자리에서는 지금 이 순간의 답 한 줄이 바로 보여야 한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닐지를 한참 고민했다. 필요한 부분만 인쇄해 갈까, 중요한 것만 추려서 폰 메모에 옮길까. 어느 쪽도 마땅치 않았다. 인쇄물은 바뀌면 그만이고, 메모로 옮기면 옮기는 동안 절반이 떨어져 나간다.

그러다 작가인 남편이 「간단한 앱 같은 거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라고 했다. 남편은 개발자가 아니다. 클로드한테 시켜 보겠다는 말이었고, 나는 솔직히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만들어졌다.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다음 편에 따로 적고, 오늘은 무엇이 필요했고 무엇이 나왔는지만 적는다.

필요한 건 세 가지였다

만들기 전에 둘이 먼저 정리한 게 있다. 여행지에서 폰을 꺼내는 순간이 언제인가. 적어 보니 세 가지였다.

  1. 지금 뭘 하는 시간인가 — 다음 일정과 남은 시간
  2.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가 — 지금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경로
  3. 기사에게 뭘 보여 주는가 — 한자로 적힌 주소

공통점은 찾아서 나오면 안 되고 열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 하나로 넣을 것과 뺄 것이 거의 다 갈렸다.

탭 다섯 개로 끝냈다

앱을 열면 나오는 첫 화면. 남은 날, 아직 안 한 일, 다음 일정이 한 화면에 있다

탭무엇이 들어 있나
오늘다음 일정 하나와 거기까지 가는 길. 남은 할 일과 아직 못 정한 것의 개수가 맨 위에 뜬다. 이 화면만 봐도 하루가 돌아가게 만든 자리다
일정28박 전체. 날마다 시간표와 그날의 평년 기온·비 온 날 비율이 같이 붙는데, 출발이 가까워지면 매일 아침 받아 오는 예보로 바뀐다. 아직 안 정한 날에는 「미정」 표시가 붙는다
장소저장해 둔 곳들이 숙소에서 걸어서 몇 분인지 순으로 뜬다
기록지출과 그날 다닌 곳, 그리고 생각
더보기할 일과 결정 · 짐 준비물 · 정보 · 환율 · 번역 · 기록 주고받기 · 사용 방법 · 공유 사진 폴더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둔 206곳이 장소 탭에 들어갔다. 맛집 123, 가볼 곳 29, 야시장 17, 생활 17, 카페 16, 술 4다. 숙소에서 도보 몇 분 순으로 뜨니까 「근처에 뭐 있지」가 검색이 아니라 목록이 된다.

더보기에 넣은 것 중에 제일 자주 열릴 것 같은 건 정보다. 비상 연락, 교통 요약, 현금과 ATM, 요일 함정, 전기, 태풍, 세관, 짧은 중국어 같은 것을 열아홉 묶음 208줄로 넣었다. 짐 준비물 28개는 떠나기 전날 둘이 같이 보려고 체크박스로 만들어 뒀다.

환율 계산기와 번역도 들어 있는데 여기는 기대를 안 한다. 어차피 쓰던 앱을 열게 될 것 같다. 안 쓰면 안 쓴 대로 돌아와서 적겠다.

일정 탭 — 날마다 평년 기온과 「비 온 날」 비율이 붙고, 안 정한 날에는 「미정」이 붙는다

안 정한 것을 담는 칸을 따로 만들었다

여기가 이 앱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보통 일정표는 정해진 것만 담는다. 그런데 우리 28박에서 아직 안 정한 게 여섯 개나 된다. 날씨를 봐야 하고, 그날 몸이 어떨지 알 수 없고, 앞 일정이 밀릴 수도 있어서다. 이걸 「미정」이라고 적어 두면 그 칸은 그냥 빈칸이 되고, 정작 정해야 하는 날 아침에는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정해야 할 것어디서무엇이 갈리나
서쪽 투어, 반나절이냐 일일이냐한국일일을 고르면 오전이 통째로 나간다
섬으로 가는 배, 어디서 예약하나한국같은 배인데 접송과 환불 조건이 다르다
박물관, 특별전도 볼까현지둘 다 보면 5~6시간, 오후 낮잠이 사라진다
아리산이냐 불광산이냐현지열한 시간이냐 반나절이냐
영사관을 들를까현지계단 오르막 40~50분을 넣느냐
물에 들어갈까현지씻고 말리는 시간까지 세 시간

그래서 이 여섯 개를 「결정」이라는 칸에 따로 세워 뒀다. 각각에 왜 갈리는지와 선택지 둘이 붙어 있고, 언제까지 정해야 하는지도 적혀 있다. 한국에서 정할 게 둘, 현지에서 정할 게 넷이다.

그리고 앱에서 하나를 고르면 그날 일정이 바뀐다. 반나절 투어를 고르면 오전 일정이 살아나고, 일일을 고르면 오전 칸이 투어로 덮인다. 고르기 전까지 그날은 「미정」 표시가 붙어 있다.

여행 계획을 세우다 보면 절반은 「가서 정하자」로 끝난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오면 무엇을 두고 저울질하기로 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미정인 채로 두는 것과, 미정이라는 사실과 그 이유를 적어 두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하루를 펼친 화면. 숙소 주소는 「기사님께 보여주기」 버튼으로 바로 뜬다

알림은 구글 캘린더에 맡겼다

앱에 알림 기능은 넣지 않았다. 앱을 열어야 보이는 알림은 어차피 놓친다. 대신 같은 일정을 캘린더 파일로 뽑아 구글 캘린더에 넣었는데 89건이다.

알림 시각은 일정 성격에 따라 다르게 줬다.

  • 비행기 90분 전 — 공항은 되돌릴 수 없다
  • 이동·체크아웃·투어 집합 60분 전 — 기차와 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 나머지 30분 전

캘린더 파일을 넣을 때 막히는 지점

파일 안에 알림 시각을 적어 넣어도 구글은 그걸 무시하고 캘린더의 기본 알림을 쓴다. 그래서 일정을 담을 캘린더를 새로 하나 만들고, 그 캘린더의 기본 알림을 먼저 30분 전으로 바꿔 둬야 한다. 그리고 파일 가져오기는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되고 폰에는 메뉴 자체가 없다.

이렇게 해 두니 앱을 안 열어도 폰이 먼저 알려 준다. 앱은 알림을 받고 열었을 때 자세한 내용을 보는 자리가 된다.

더보기 — 할 일과 결정, 짐, 정보, 환율, 번역이 여기 모여 있다

인터넷이 끊기는 날을 위한 한 장

이 앱은 인터넷이 있어야 열린다. 그래서 인터넷 없이 볼 한 장을 따로 만들었다. 비상 연락, 숙소 네 곳의 한자 주소, 짧은 중국어, 전기와 콘센트, 태풍 오는 날 확인할 것이 한 화면에 들어 있고, 도시와 숙소 주변 지도 일곱 장도 이미지로 같이 들어 있다.

쓸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쓸 일이 생기는 날은 대개 제일 곤란한 날이다.

지출 기록에는 아직 문제가 있다

솔직하게 적자면 여기는 아직 깔끔하지 않다. 앱이 서버 없이 도는 구조라 지출 기록이 그 폰에만 쌓인다. 둘이 따로 적으면 합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한 사람 폰에서만 적기로 정해 뒀다. 두 폰의 기록을 합치는 방법도 만들어 두긴 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하겠다. 서버 없이 만들면 이런 것들이 하나씩 숙제로 남는다.

이걸 왜 만들었나

이 앱이 한 일은 새로운 정보를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조사해 둔 걸 쓸 수 있는 자리로 옮긴 것뿐이다. 문서에 있던 숙소 주소는 기사에게 보여 주는 화면이 됐고, 표에 있던 투어 비교는 그날 아침에 고르는 버튼이 됐다.

조사는 다들 열심히 한다. 문제는 그게 여행지에서 안 열린다는 거다. 우리도 자료는 다 있었는데 꺼낼 방법이 없었다.

다음 편에는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적는다. 코딩을 못 하는 사람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서 막히는지, 그리고 일정이 바뀔 때마다 앱과 캘린더를 다시 만들지 않아도 되게 한 구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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