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2014. 4. 5. 02:32

[다큐] 2014_ 아파트 중독

오팩 공간 프로젝트에서 소개한 다큐. 

최근 이사를 하면서 공간이 곧 내 삶과 가치를 반영하기도 하고, 뒤흔들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학창시절 대구에서 우리 가족은 계속 주택에서 살아왔지만, 혼자 서울에 올라온 이후 기숙사 - 고시원 - 복층오피스텔 - 원룸 - 빌라 - 오래된 아파트까지 다양한 주거 환경을 거쳐왔고, 그때마다 내가 다음에 살게될 집은 어땠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어왔다.

집이라는 것은 내가 생활하는 내부 공간 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 역시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낡고 불편하고 좁아진 지금의 내 집에 불만이 많지만, 용기를 내어 8년간 지냈던 관악을 떠나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낯선 이 동네로 흘러와보니, 모든 것에 새로 다시 적응해 나아가야한다는 것이 오히려 생의 감각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또 한강도 가깝고 구경거리도 많은 주변환경이 꽤나 만족스럽다. 

아파트에 살아보지 못해 오히려 더 궁금했던 대한민국 대부분 사람들의 삶을 이 다큐를 통해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1부 공간의 발견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는 1958년 처음 등장하여, 우리의 삶 터를 지배했고, 도시의 풍경 마저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인의 집. 아파트는 그래서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지만, 아파트를 우리의 일상, 삶 터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없었다. 사는 공간으로써의 아파트, 사는 동네로써의 아파트, 삶의 가치를 묻는 아파트로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부족한 주택의 공급을 위해 싸고, 빠르게 지어 공급하기 위해서 각 층마다 동일한 구조를 쌓아올려 만들어졌다


전국 아파트 중 전용면적 85m2(약 33평)의 비율이 약 25%

동일한 구조에 사는 9가구의 일상


안방에서는 부부가 잠을 자고, 거실에서는 TV를 보고, 자녀들이 작은 두방에서 공부를 하는 규정된 공간 정의. 

부부와 자녀 2인이 기준이기 때문에 다자녀 가정이나 1인, 2인 가족 등 다른 유형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형태이다.


아파트 공간에서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제한적인 생각에 갇히게 한다.



똑같은 평수에 사는 세 가족의 생활 패턴, 구성원, 요구에 맞게 새로운 가구를 배치해 공간 변화를 제안한다.




 

꼭 건물 외형이나 구조를 바꾸지 않더라도 공간을 구분하는 가구만으로도 삶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2부 시간이 만드는 집


1.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프랑스의 아파트 이야기.


파리의 500년된 집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부. 오래된 것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정이 보인다




1888년 건축가 뱌스롤이 설계한 아파트.  파리 최초의 서민 임대 주택.  



2002년 카쿱이 설계한 신축 아파트


낡은 아파트를 허문 자리에 새 아파트를 짓는다해도 긴 시간을 지켜온 도시의 풍경을 거스리지 않도록 주변의 오래된 아파트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원칙이다.

프랑스에서는 탈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문화유산을 신성시하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따라서 도시 형태에 숙명성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문제인 것이다.



2. 중국 베이징


베이징의 도심은 서울보다 더 높고 많은 아파트들로 가득차 있다. 베이징 뿐만 아니라 외곽의 신도시들도 분양 광풍이 일고 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중국내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추월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산업혁명때 영국이 그랬던것 처럼 도시화의 부작용이 뒤따르고 있다.


지하 방공시설을 불법적으로 개조한 주거형태 췬쭈팡. 이마저도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70년대에 그랬듯 대규모 신흥부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편리하고 쾌적한 주거지가 없기 때문에, 질적으로 낮거나 양적으로 부족한 도시 기반 시설을 포기하고 수입한 건축 취향에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색감이나 장식이 결속된 국적 없는 아파트 단지가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3. 아파트의 진화. 대규모 주거단지.



우리는 왜 아파트단지를 만들게 됐을까?

아파트 단지는 도시 환경 수준이 방치된 상태에서 단지라는 일정한 구역 내에 놀이터, 녹지, 휴게 공간, 운동시설 등 모든 것을 갖추어 일정 수준 이상의 환경을 갖춘 동네와 집을 공급하고, 이것을 시민들에게 자기 돈을 주고 구매하게 만든 것이다. 모든 시민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동네와 집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아파트 단지를 통해서 충족하는 것 이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유니테 다비타시옹


이 아파트는 1인부터 6인가족까지 모두 수용 가능한 23가지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은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늘 햇빛을 받을 수 있고, 편의를 위해 7층과 8층에는 서비스 공간이 있고, 옥상에는 수영장과 체육시설까지 갖추었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통해 이상적인 공동사회를 꿈꿨던 르코르뷔지에. 단지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건축가의 희망과는 다르게  시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완공된 후에도 사람들은 입주하지 않았고 수년간 건축가의 기념물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모든 것을 튼튼하고 값싸고 효율적으로 대량생산하는 것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근대사회의 전형적인 패러다임이었다. 필요한 기능을 어딘가에 제공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찾아가서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라들은 모든 생활 행위를 자신의 일상생활 동선 안에서 해결하고 싶어 한다. 


유럽인들은 1960년대에 다시 반성을 하게 된다. 근대주의에서 말하는 편리성, 효율성, 속도 등으로 도시를 만들어 보니 옛날 도시가 갖고 있던 정감이 없고 삭막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뜻에서 그들은 다시 그 이전의 것들을 복원하고 복구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프랑스 남쪽 대규모 공동주택 단지 라 그랑드 보른. 르꼬르뷔지에의 근대도시철학을 이어 받아 설계된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건축가. 외곽에는 차가 다니지만 시내에는 들어오지 않고 높고 큰 건물이 아니라 인간적인 규모의 건물들이 있는 녹지 공간의 도시. 문제는 도시가 다른 도시들과 연결되어있지 않고 고립되어있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단지, 고립된 일상을 견딜수 없던 주민들은 하나둘 이곳을 떠나 저소득층만이 남게되었고, 우범지대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1974년 파리, 그랑 앙상블(대규모 공동주택) 건설을 위한 '우선 도시화지구' 개발이 중단되며 대단지 개발 정책이 사라지게 되었다. 



파리 외곽의 단지 사르셀 역시 그랑 앙상블의 실패 사례.

이곳에서 재건축이 한창 진행중이다. 기존의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의 철학은 우리와는 다르다. 기존 지역과의 연속적인 조화가 잘 이뤄져야 한다. 한 지역이 도시 전체의 조화를 해치지 않아야 하고 조화를 위해 일부 건물들은 그대로 잘 보존한다. 기본 토대에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것이다. 만약 기존의 도시 형태와 큰 차이가 생긴다면 기존 도시와 잘 어울리는지에 대해서 사회학적, 건축학적인 논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우리의 눈에는 좁고 불편해 보일 수 있는 오래된 파리의 아파트, 그러나 이들에게는 도시의 길과 맞닿아 풍부한 공공 환경을 누릴 수 있고, 세월의 흔적이 쌓여 개성있는 아파트가 파리사람들에게는 좋은 아파트이다.




우리 나라의 아파트는 짓고 허물기를 반복할수록 그 몸집이 더욱더 거대해지고 담장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풍요로운 삶이 단지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관리하면서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도시 정비에 관한 정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삶과 공간에 대한 고찰은 활발하다. 한국인들은 이제 다른 형태의 주거시설을 바라고 있다. 밀도가 높은 공동주택에 살더라도 예전에 지어진 건물과는 다른 더 다양하고 공을 들인 주거 형태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바쁜 일상을 벗어나고자하는 트렌드가 있다면, 그것이 도시를 만드는 일, 아파트를 만드는 일에도 반영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20세기 중후반부에 우리가 해왔떤 바쁜 아파트 만들기에 대한 반성은 근본적으로 속도에 관한 문제이다. 빨리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지혜롭게 하는 것이 우리가 21세기에 가져야할 태도일 것이다.



3부 우리는 왜 아파트에 사는가



아파트에 살고있는 다양한 가족들이 그동안 꿈꿔왔던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 그림 안에는 어떤 내면의 이야기와 사회적인 현상이 있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을 통해 분석한 전문가들의 인사이트/의견

- 우리는 현실세계에서는 없으면 불편하는 것을 채우는 식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싶고 꿈꾸는 집에서는 '아 그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그려내는 솜씨가 초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다.

- 단독주택 선호 67%/ 2층집 45%. 실제로는 우리나라 주택 총 수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60%. 최근 아파트의 자산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집 곳곳에  CCTV를 그려넣었다.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강박, 어른들의 훈육의 영향도 있을것임. 안전이라는 것이 아파트의 선택 기준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되어가고 있음

- 애완동물. 정서적 갈증

- 커다란 창문. 통유리. . 아파트 창문을 열면 건너편 아파트의 똑같은 창문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선호하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특성이다. 사람들이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에서 탁 트인 개방적인 공간을 경험해본 적이 없고 그것에 대한 갈증이 표현되는 것.

-  사람들의 그림을 보면 외형은 개성이 있지만, 내부는 획일화된 공간 구성이 대부분임.  사회에 필요한 여러가지 감성이나 지능 중 공간감성이 퇴화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력이 주거환경에 의해서 제한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

- 우리나라 아파트는 집 한 가운데 거실을 두고 부엌과 방들이 한눈에 보이도록 연결된 가족중심적인 구조이지만, 다른 나라는 공용 공간이 한쪽에 몰려있고 방들은 집 안쪽에 함께 배치되어 사생활을 존중하는 구조

- 개방된 구조이다보니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함

- 편리함, 교육, 안전, 직장, 교통, 네트워크 등의 이유로 아파트를 여전히 선택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음


높은 '고립불안'을 지니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동질감을 부여한다. 우리는 같은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안심을 주는 것이다. 아파트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여러가지 모순, 갈망, 결핍을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는 나를 행복하게 해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불편하지 않은, 후회를 하지 않게 해주는 공간인 것이다. 후회를 하지 않는 경험이 꼭 만족이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꿈꾸는 집이 있지만 지금 당장 이사를 갈수 있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주어진 현실적인 조건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던 아파트, 사람들이 그 안에서 느끼는 결핍이 점점 커져가면서 새로운 가치를 담은 공간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하는 때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UPGww8KqnYs